
(엑스포츠뉴스 윤준석 기자) "내 밑에서 콘 놓고 하던 놈이 많이 컸다"충격적인 이 한마디는, 광주FC 이정효 감독이 지도자 생활하면서 직접 들은 말이다. K리그1 3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8강이라는 전례 없는 성과를 만든 그에게 과거 한 선배 지도자가 날린 조롱은 씁쓸한 한국 축구계의 단면을 보여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효 감독은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한국 축구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지난해 광주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옐로 스피릿 2024'에서는 지난해 8월에 펼쳐졌던 울산전을 앞두고 이 감독이 선수들에게 전한 솔직한 고백이 담겨있어 화제를 모았다.영상 속 이정효 감독은 “내가 코치하다가 감독이 됐잖아. 나도 성장하고 직위도 올라갔는데, 호칭도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니냐"며 "그런데 어떤 분이 '내 밑에서 콘 놓고 하던 놈이 많이 컸다'고 하더라”라고 고백했다.

이정효 감독은 과거 선수시절, 대우 로얄즈(현 부산아이파크)에서만 222경기를 소화한 원클럽맨이다.하지만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선수 은퇴 후였다. 모교 아주대학교에서 코치로 지도자 인생을 시작했고, 아주대 감독을 거쳐 프로팀 전남, 성남, 제주에서 수석코치를 맡으며 묵묵히 경험을 쌓았다.흔히 말하는 국가대표 출신의 엘리트가 아니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정효 감독에게 K리그1 사령탑 자리는 쉽지 않았다. 2022년 K리그2로 강등된 광주는 위기 속에서 그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그 선택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하지만 이정효 감독은 첫 시즌부터 리그 승점 86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으로 K리그2 우승과 승격을 동시에 달성하며 성공신화를 써내려갔다. 이어진 2023시즌엔 K리그1 3위라는 광주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을 거두며 아시아 무대까지 진출했다. 시민구단으로서 이룬 쾌거였다.

이정효 감독의 이번 발언은 지도자 사이에서 나온,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로 한국 축구 내 뿌리 깊은 권위주의와 학연, 지연 중심의 문화에 다시금 물음을 던진다.이 감독은 "내가 왜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싶었다"며 상처를 드러내면서도, 이어 현재 울산을 이끌고 있는 김판곤 감독에 대한 존경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김판곤 감독님은 나를 제자라고 해도 감독으로 존중해주신다. 진짜 어른이자 진정한 지도자"라고 덧붙였다.올해 이정효 감독은 또 하나의 신화를 써냈다. ACLE 16강에서 일본의 비셀 고베를 상대로 1차전 0-2 패배를 딛고, 2차전에서 3-0 대역전승을 거두며 시민구단 최초로 아시아 무대 8강에 진출한 것이다.한국을 대표하던 울산과 포항이 일찌감치 탈락한 가운데, 광주만이 유일하게 생존했다. 이제 그들이 맞설 상대는 사우디의 명문, 알 힐랄이다. 광주와는 비교조차 어려운 자금력과 인프라를 가진 팀이다.하지만 이정효 감독과 광주는, 그간 계속 그래왔듯 이변을 꿈꾸고 있다.더 이상 '콘 놓던 코치'가 아니라, K리그 최고의 명장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그의 축구 철학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무대에서도 통하고 있다.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